데라카도 신 (寺門 伸) 교수의 “조선반도에서 일본을 바라본다” 일본인.일본문화의 뿌리(5)의 연재를 계속합니다.
조선반도와 일본과의 관계는 영국과 아메리카 합중국의 관계와 닮았다고 말하는사람이 있는데, 기본적으로 이 생각에 찬성이다. 반도에서의 이민이 열도에 건너와 만든 것이 일본이다. 한편 신대륙 (아메리카)에는 유럽에서의 이민이 몰려와, 유럽내의 역학관계에 의하여 북아메리카의 태반은 영국의 식민지가 되나, 결국 독립을 쟁취, 본국을 능가하는 국력을 갖게 되었다는 점에서, 양국 (일본과 아메리카)의 역사에 공통점이 있다.
아메리카 합중국의 국민은, 자국의 역사를 어떻게 생각할까. 현재 아메리카 합중국이라 불리는 지역에 유럽인이 대거 밀려 오기 전, 거기는 인디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독자의 문화를 갖고 생활하고 있었으나, 합중국의 역사에는 콜럼부스의 아메리카 도달 이전의 인디언들의 생활과 문화가 등장할 일은 없다. 왜냐하면, 합중국 사람들은 자기 나라의 문화적 뿌리가 유럽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메리카 대륙사”라면, 인디언의 문화나 마야문명과 잉카문명의 존재를 무시할 리가 없게 된다.) 인디언 문화가 현재의 합중국 문화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느냐 하면 그렇지만은 않다. 인디언의 자손들도 합중국의 소수민족으로 존재하고 있다 (약 200만명, 총 인구의 약 0.8%). 그러나 인디언의 문화가 합중국 문화의 뿌리라고는 아무도 말 하지 않는다. 아메리카 인디안의 문화와 繩文문화를 동일시하는 것은 난폭한 논의라고 할 지 모르지만 문화의 아이덴티티란 관점에서 생각하면 이 유비가 결코 틀리지 않다고 본다.
<주1> 식민지란 말은 제국주의시대이후의 개념이므로 고대의 열도 (현재의 일본)과 반도 (현재의 한국.북조선 지역)의 국가간의 관계를 식민지나 지배 피지배란 용어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잘못이다.
<주2> 고대의 조선반도에는, 복수의 다른 민족이 살고 있었던 것 같다 (상세불명). 그들은 좁은 반도에 오랫동안 공존하는 동안, 동일한 (또는 유사한) 문화를 공유하게 되었으리라. 이 문화가 열도에 전파되는데, 이것을 우리는 야요이문화 (彌生文化)라 부른다. 이 지역을 가칭 “고대동아시아문화권”이라 명명하자 (“코리아-저팬문화권”이란 명칭도 생각해 보았음). 중국문화의 임팩트를 받아 생긴 이 문화는, 드디어 독자의 발전을 보여, 이 지역에 고도한 문화의 꽃을 피운다. 왜국과 야마타이국과 초기의 야마토조정은 반도의 가야, 고구려, 신라, 백제등과 함께, 이 문화권에 있는 나라로 이해해야 된다. 이 지역을 하나의 문화권으로 보는 것은, 이것이 알타이어족에 의한 문화권이기 때문이다.
<주3> 현재의 한국, 북조선의 표준어 (한국어 = 조선어) 는 신라어가 발전한 것으로, 신라의 언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는데, 가야, 고구려, 백제라는 나라에서 어떤 언어가 사용되었는지 보여 주는 문헌이 없어 유감스럽지만 알 수 없다. (비문과 銘등은 있으나, 공문서는 모두 한문으로 기재되었으므로, 일상의 언어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민족이 다양했다면 언어도 다양했을 터. 그러나 그들의 언어는 (중국어를 빼면) 알타이어 족에 속하는 언어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일본어의 祖語도 그 가운데 하나로 반도 가운데 일본어의 조어를 말하는 사람들 (아마도 왜인들) 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어쨋든 문헌이 없으므로 현재로서는 그것을 증명할 길이 없다.
고대의 일본이 왜국으로 불렸다는 것은 여러분 모두 잘 아는 일인데, 왜국이란 왜인들의 나라라는 것으로, 왜인이란 원래 일정의 인종 그룹을 지칭하는 명칭이었다고 생각된다. (“허리가 앞으로 구부러지고 키가 작은 사람” 이라는 의미라는 설이 유력하다). 그리하여, 이 왜인들은, 열도 (현재의 일본) 뿐 아니라, 반도 (현재의 조선) 에도 살고 있었던 것 같다. 중국의 사서에 등장하는 “왜” 나 “야마타이국”이, 훗날의 대화조정과 어떤 관계였을까는 밝혀진 바 없다. 어느 쪽도 彌生人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 간 나라이므로, 왜인의 祖先은 도래인이라 생각해야 된다. 그러면 왜인은 가야인, 고구려인, 신라인, 백제인과 나란히 반도에 살고있던 한 민족이었다고 할 수 있다.
(주) 단, 당시 반도의 인종구성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므로, 신라인과는 인종적으로 다른 가야인과 백제인, 고구려인이 있었을지 어떨지는 불명이다. 고구려의 왕과 백제의 왕은 동족이었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이 양국은 인종적으로 동일할 가능성이 높다. 가야는 일본에서 미마나(任那)로 불렸고 이 지역은 고대일본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어서, “가야 = 왜”라는 설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또 일본열도에 정착한 도래인의 전부가 반도에서 왔을 리는 없고, 중국대륙에서 오거나 남방의 섬에서 들어 온 루트도 생각할 수 있으나 반도에서 온 사람들이 도래인의 주류를 차지한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또 양자강 유역에 있던 水稻米作민족이 조선반도와 일본열도에 동시기에 도래하여, 그들이 彌生문화를 가져 온 것이라는 설도 있으나 그 경우라도, 일본문화와 조선문화는 동일한 뿌리라고 할 수 있다.
반도의 각 지역으로 부터 일본에 들어 온 도래인들은 정착한 지역마다 소규모의 나라를 형성하였다. (이 나라를 만든다는 생각 자체가 야요이인이 열도에 가져 온 생각이다). 열도에서 도래인의 다수파였다고 생각되는 왜인의 그룹이 강대하게 되고, 이것이 다른 그룹을 복속시켜서 (다른 말로 하면 규합하여), 드디어 통일 국가로 향해 갔다고 생각된다. “倭”란 후에 열도의 통일국가를 가리키는 명칭이 되어, 왜가 국명으로 불리게 되고, 이민족 (彌生人, 繩文人을 불문하고) 지배지역으로 확대하여 감에 따라 새로운 倭국이 되고 그 지역에 살던 사람도 또한 왜인으로 불리데 되었다. 또 왜인이라 불린 사람들은 제주도, 조선반도 남부등에도 있었다고 보이나, 신라왕국 형성후 조선반도의 “왜인”은 신라인이 되었다. 이렇게 왜인과 일본인이 동일시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명확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아미노 요시히꼬 (網野善彦, 1928 – 2004) 씨의 “일본의 역사제 00권: 일본이란 무었인가” (講談社)의 일절 (P87)인데, 여기에 아이덴티티라고 하는 중요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같은 아이덴티티라도 <민족적 ( =인종적) 아이덴티티>와 <문화적 아이덴티티>, 그리고 <국가적 아이덴티티>의 3가지는 분명이 구별할 필요가 있으나 우리들은 이 구별이 애매하므로, “같은 일본인 (=국가적 아이덴티티가 동일) 이면 문화도 민족도 같을 터 (문화적, 민족적 아이덴티티가 동일)”라고 생각해 버린다.
정치가들이 “일본은 단일민족이다”라고 발언하여 항의를 받아 사죄하고, 철회하는 것을, 끓임없이 반복하는 것도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일본인 (의 대다수)가 繩文人을 일본인의 뿌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繩文문화가 자기의 문화적 아이덴티티라고 보고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틀렸다는 것은 이미 말 했지만, 일본인이 옳바른 자기인식과 역사인식 (양자는 결국 동일한 것이다) 을 갖고 있지 않은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그래서 이 그릇된 아이덴티티는 일본인의 유니크 신앙으로 부터 온 것이며 또 그 근본에는 “천황제”가 있다.
앞에 말한 網野善彦씨는 같은 “일본이란 무었인가” 에서, 1999년 8월 9일 성립한 “國旗國歌法법안”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법안의 제안자, 찬성자에게 이것은 1945년 8월 15일 패전이래 오랜 “현안”의 해결인 것이며,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일본인이 갖게 하는데 기여하고 싶다는 의도로, 법안성립이 강행되었을 것이다…. (중략) ….
이 법률은 2월 11일이라는 戰前의 紀元節, 즉 神武천황의 즉위일이라는 전적으로 架空의 날을 “건국기념일”이라고 정하여 국가의 국기국가를 법제화한 것으로, 어떤 식으로 해석을 바꾸더라도, 이것이 戰前의 히노마루(日丸), 기미가요(君代)와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p19 – 20). 여기 계속되는 부분에서, 綱野씨는 “이렇게 허위에 입각하여 국가를 상징하고 칭송할 것을 법의 이름하에 정한 것이 이 “국기, 국가법”이라고 근엄한 어조로 일본정부의 역사인식을 비판하고 있다. 일본의 건국기념일이 신화에 근거한 것이며 아무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명확히 인식해 둘 필요가 있다. 이것은 근대국가로서 아주 수치스런 일이다.
신화를 국가의 틀의 기본 (=상징으로서의 천황제) 으로 하는 나라에 옳바른 역사인식이 있을 리가 없다. 천황제가 그 근거를 (헌법제1조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며 일본국민 통합의 상징이며, 이 지위는 주권을 가진 일본국민의 총의에 바탕을 둔다”고 명기되어 있듯) 국민총의에 두는 것이 아니라, 그와는 정반대로 정부의 정통성이 천황제에 바탕을 둔다고 생각하는 한 (자민당보수파의 정치가들이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은 명백하다), 역사의 신화화는 피 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마지막 부분은 어려운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이 논점을 좀 더 상세히 이야기할 필요가 있으나, 길어지게 되므로 이 정도로 마치고 금회의 내용을 간추린다.
일본과 한국 (및 북조선)은 공통의 문화적 뿌리를 갖는다. 따라서 한국 (및 북조선) 의 언어, 문화, 역사를 살펴서 일본과 비교 대조하는 것이, 우리들이 “일본이란 무었인가”를 생각할 때 극히 중요한 힌트를 줄 것이다. 일본과 한국 (및 북조선)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인종적으로도 공통의 뿌리를 가졌을 가능성이 높다.
<보족>여기서 기술한 내용을 보고 日朝同祖論과 동일하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으리라고 본다. 일조동조론이란 1921년 키타 사다키치(喜田貞吉, 1871 – 1939) 씨에 의해 발표되었던, 일본과 朝鮮이 祖先을 같이 하는 동족, 결국 형제민족이라고 하는 설이다. (단 이때 일본이 형에 해당한다). 이 생각은 일본의 조선반도 식민지 경영에 이용되었으므로, 日朝同祖論이란 말만 들으면, 일본인이고 한국인이고 간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많다. 일본인과 한국인은 부분적으로 동일 인종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 하기도 하나, 실은 이것은 거의 의미가 없는 말이다.
현재의 일본인과 한국인은 민족적으로 다르다 (민족이란 개념은 공동환상이며, 생물학적으로 정의 되는 인종과는 관계없다) 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것이므로, 그 위에 서서, 이 두 민족이 공통의 문화적 뿌리를 갖는다는 것, 이것을 확실히 인식하는 것이, 일본인에게나 한국인에게나 중요하지 않겠는가. 日朝同祖論이란 용어에 빗대 말하면, 日韓(朝)文化同源論 정도로 하면 되지 않을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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