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 3일 토요일

5. 구약의 이스라엘 통일왕조 시대

나는 사람이 만들어 낸 것가운데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을 고르라면 주저없이 신 (神 Kami)이라고 대답하겠다. 신을 가장 좋아하는 민족을 꼽으라면 이스라엘과 일본을 꼽을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가장 오래동안 유일신을 받들어온 길고 긴 역사를 가졌지만 3500년간 통일왕조를 운영한 것은 98년에 불과하다. Saul– David – Solomon 3명의 왕이 BC 1020 – BC 922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지자 Samuel을 졸라서 벤냐민 지파의 군사적 지도자 Saul을 뽑아 머리에 기름을 붓고 입 맞추어 왕으로 삼고 반기니 기원전 1020년이었다. 그 무렵 중국에서는 주나라 무왕이 쿠테타로 천자의 자리에 오른다. 왕이 된 뒤 Saul은 블레셋 (The Philistines)과 부질없는 성전(聖戰)에 집착 하다가 길보아산 정상에서 화살에 맞아 자결하고 만다.

브레셋의 거인장수 골리앗을 물리치고 민족의 영웅이 된 David는 국민의 인기가 올라갈수록 부마의 신분이었지만 Saul의 질투와 견제를 받았다. 다윗은 왕이 된 후 여러부족들의 다양한 욕구를 절충하여 통일왕조의 기틀을 다진다. 그러나 차차 방자해져서 야훼를 배반한다. 왕에게 충성스런 젊은 장교 Uriah의 아내 Bathsheba를 범하고 임신하자 Uriah를 전쟁터에 내 보내 전사하도록 공작한다. Uriah가 죽자 다윗은 Bathsheba를 후궁으로 들인다. 그런 와중에 다윗의 아들과 딸간에 근친상간의 수치스런 일이 생기고 이 일로 두 아들이 반목하여 누이를 범한 동생을 죽이고 압살롬은 아버지에게 반란을 일으켜 골육상쟁의 전쟁이 시작된다. 압살롬이 장군 요압의 창에 찔려 죽고 Bathsheba에게서 태어난 첫 아들이 야훼의 저주로 죽는다. 후에 둘째로 아들을 얻으니 그가 Solomon이다.

다윗도 말년에 오랬동안 병석에서 지냈다. 후계자를 정하지 않고 거기까지 왔으니 권력을 잡기 위해 많은 사연들이 기록되어 있다. 나이 70세에 임종이 가까워지자 전처 소생의 장성한 많은 왕자들을 젖히고 12살 된 Solomon을 후계자로 지명하고 당부했다. “나는 이제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가야하는 길을 떠난다. 너는 용감한 사나이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데로 주께서 지시한 길을 따라 주의 율법과 계명 그리고 증거의 말씀을 지켜라.” (열왕기상 2:2-3).

이스라엘 통일왕국의 황금기를 구가한 King Solomon (BC961 – BC 922 재위)은 지혜의 대명사처럼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허물도 많았던 사람이었다. 그는 말년에 음탕과 사치에 빠져 야훼를 배반하고 국가를 파멸로 이끈다. 외국여자를 아내로 삼지 말라는 야훼의 명령을 어기고 무려 700이나 되는 후궁을 거느렸고 그 외로 수청드는 여자가 3백이었다. 외국여자들이 이방의 신을 궁중에 모시었으니 야훼의 분노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Solomon이 죽자 이스라엘은 유다왕국과 이스라엘왕국으로 분열된다. 북의 이스라엘왕국은 BC 722년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하고 유다왕국은 BC 587년 바빌로니아 (현재의 이라크)에게 망하여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바빌론(바그다드)으로 끌려간다. 이 사건을 바빌론 유치 (Babylonian Exile, BC 586 – BC 538의 48년간)라고 부른다.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의 엑소더스같은 기적을 기다렸지만 야훼의 응답은 없었다. 그후 BC 539년 페르시아 (이란)의 Cyrus II (BC 550 – BC 529 재위) 가 바빌론을 점령하는 바람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고향 땅에 돌아 갈 수 있었다.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과 백성들에게 그의 감격스런 소회를 아름다운 문장으로 남겼다. 이사야서 40 – 55 장 참조.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돌아와 제 2의 성전을 지었다. 그러나 역사는 그들의 소망을 배반하고 Alexander the Great가 나타나 이스라엘을 쓸어 버리고 프톨레미 왕조가 들어섰다가 BC 63년 로마 장군 폼페이우스가 예루살렘을 장악해버린다. 이후 예수의 시대가 오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20세기까지 나라없는 기나 긴 수난의 터널을 지나온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역사상 가장 강성한 국가로 기록한 성서를 바탕으로 조상들의 자랑스런 모습을 찾기위하여 1970년대와 1980년대 이스라엘 고고학자들이 총 동원되어 필사적인 발굴을 실시했지만 솔로몬의 신전과 궁전의 작은 그림자도 발견할 수없었다. 솔로몬왕보다 300년전 이집트를 통치한 Pharaoh Ramses II 의 흔적은 이집트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데 광대한 제국과 군대를 거느렸고 Queen of Sheba의 찬사로 가득 한 솔로몬왕 (1 King 4, 21-26, and 1 King 9, 17-23, 2 Chronicles 9, 25-26)의 흔적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그에게 세금을 바쳤다는 그 많은 영주들은 하나의 기록도 남기지 않았고 그 많았다는 병사들도 칼과 투구 방패같은 무기류를 단 하나 남기지않았다. 여기서 구약의 이 부분 기록이 어떤 의도에 의한 Fiction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솔로몬은 인구 5천 남짓의 작은 도시국가의 왕이었다고 본다. 일본역사기록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고의적인 왜곡을 보아 온 우리는 역사서란 해석되어야 하는 문서라는 것을 알고있다. 예민한 문제이므로 각자의 상상에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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