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축을 허가하였다. 정부는 31일 오전 세종로 중앙청사에서 민관합동 행정협의조정위원회 본회의를 열어 제2롯데월드를 건립하더라도 서울공항의 비행안전에는 문제가 없다고 결론내리고 제2롯데월드를 허용키로 최종확정했다. 이로써 15년을 끌어온 제2롯데월드 건축이 마침내 허용됐다.
제2롯데월드의 초고층 빌딩이 空軍의 서울공항 비행안전과 관련된 고도제한 이슈를 돌파하고 당국의 건축허가를 받은 것이다. 2015년 완공예정인 이 건물은 112층 555미터 높이로 당분간 수도 서울의 랜드마크가 될 전망이다

古代의 首都임을 증명하려면 성곽과 궁전의 유적이 있고 밀도 높은 유물이 출토되어야 된다. 풍납토성은 수도로서 이러한 요건을 잘 만족시키고 있으나 또 하나의 결정적인 조건이 필요하다. 제국의 위광을 사해에 떨치던 시절 거대하게 축조되었을 옛 왕실의 古墳이 주위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한성백제의 고분으로 서울 송파구 석촌동에 남아 있는 석촌동고분군과 방이동고분군이 이에 해당되는 유적이다.
이 고분군은 서울특별시 송파구 석촌동에 위치한 한성 백제 시대 중심묘역이다. 사적 243호인 석촌동 고분군은 일제시대만 해도 80기 이상 (석총 66기 포함) 의 고분이 남아 있다고 조사되었다. 이후 1974년 잠실지구 유적조사단에서 발굴하였을 때 형태를 유지하고 있던 것은 3.4호분 적석묘와 5호분 봉토분 뿐이었다. 석촌동 고분군은 1983 – 1984년에 서울대학교 박물관이 발굴조사를 실시하였으며, 토광묘 계통과 적석묘 계통, 즙석봉토분, 火葬유구 등이 확인되었다.
백제 한성시대 (493년간)란 제1대 온조왕이 기원전 18년 백제를 건국하여 제21대 개로왕의 위례성이 고구려의 장수왕에게 함락된 서기 475년까지를 말한다. 이후 백제의 역사는 웅진(공주)에서 64년간 (475 – 538), 사비(부여)에서 123년 (538 – 660) 존속한다.

서울시 석촌동 일대에 위치한 고분군은 시기적으로 백제초기에서 4세기에 해당하며 형태로는 계단식 돌 무지 무덤 (積石塚) 이다. 석촌동 무덤들은 백제초기 만들어진 무덤으로 일제 때 처음 조사되었다. 1호, 2호 무덤은 주민들이 농사짓는 땅으로 이용해서 내부구조가 크게 훼손되었고 유물역시 대부분 유출되거나 파손된 상태였다. 다만 3호 무덤은 기원후부터 나타나는 고구려 무덤 형식인 계단식 돌 무지 무덤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1974년 서울대학교박물관 고고학과에 의해 일제강점기부터 그 존재가 잘 알려저 왔던 석촌동 3호 및 4호 적석총에 대한 발굴조사가 있었다. 1983년과 1984년 재조사 결과 3호분은 고구려 적석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을 뿐 아니라 제 1단의 크기가 동서 50.8미터, 남북 48.4미터, 높이 4.5미터로서 集安의 최대적석총인 태왕릉 (1변 길이 60미터)보다는 작으나 장수왕릉 (1변 길이 30미터)보다 큰 초대형급 적석총으로서 왕릉임이 분명하다. 이 무덤은 石山에서 깍아 온 막돌로 쌓아 올려 현재 3단까지 남아 있으며 제1단은 바깥면에는 고구려 성벽에서 보는 바와같은 장방형상자형으로 다듬은 돌을 써서 정면하였고 제1단의 땅에 닿는 부분에는 넓고 큰 석판을 한줄 돌려 깔아 북한에서 부르는 기단식적석총의 수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후대의 교란이 심하여 매장 주체부는 확인하지 못하였으나 축조 기반층으로 판단되는 점토 섞인 자갈층에서 東晉代의 청자 반구호 구연부편이 출토되어 근초고왕(346 – 375 재위) 릉으로 비정되기도 한다.

석촌동 1호분은 남분과 북분이 결합된 쌍분으로 규모는 22.3 x 12.8 x 1m인데 북분의 경우 상부

석촌동 3호분은 전형적인 고구려식 적석묘로 제 1단의 규모가 동

고분이 자리잡은 석촌동의 표고 20미텨 정도의 남북방향의 대지위에는 1917년 당시만 해도 60기 이상의 적석총이 남아 있었으나 1970년대 지상에 墳形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여기 지정된 2기 (3호, 4호)뿐이었다. 그러나 1987년 발굴에 의하면 4호분에서 남쪽으로 240미터 위치에 있는 5호분 봉토분과 4호분사이에도 10여기의 돌무지 무덤과 석곽묘등 백제 초기 고분의 잔구가 남아있었다.
이 송파구 석촌동 방이동 일대에는 여러가지 형식의 고분들이 있으나 그 중 적석총과 굴식돌방

우리는 이 연재의 글 "48. 倭建命의 東征 " 의 마지막의 언급을 기억하고 있다. “ 能褒野에서 야마토(大和)를 향해 한 마리의 백조가 날아갔다. 이 백조가 최초로 내려 와 앉았다는 전설지의 하나가 나라현 고세시(御所市) 코토히키하라 (琴彈原)로 이곳에 白鳥陵이 있다. 내려와 앉았던 백조는 기운을 차려 다시 하늘로 솟아 오르더니 가와치 후루이치무라 (河內古市邑, 현 大阪府 羽曳野市)에 머문다. 이 일을 기념하여 이곳에도 시라토리노 미사사기 (白鳥陵)을 만들었다. 그후 백조는 다시 후루이치무라 (河內古市邑)를 떠나 먼 서쪽 하늘로 날아 갔는데 이번에는 아무도 그 간 곳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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