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 23일 수요일

16. 쇼우와(昭和)시대 고도경제성장의 종언

 
쇼우와(昭和)시대는 서기 1926년(원년)부터 1989년(쇼우와 64년)까지의 62년 14일간이다. 그 기간에 세계경제공황(1929), 만주사변(1931), 중일전쟁(1937), 제2차 세계대전(1939, 독일의 폴란드 침공), 태평양 전쟁(1941),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투하(1945), 일본의 무조건 항복(1945), 일본국 헌법제정(1946), 한국전쟁(1950), 동경올림픽(1964), , 일본만국박람회(1970)등을 거치며 일본은 1960년대부터 고도경제성장시대를 맞는다.
일본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한 시기는 1954 (昭和29年) 12월부터 1973년 (昭和48年) 11월까지의 19년 간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황폐와 혼란의 와중에서 일본경제는 1950년대의 한국전쟁특수라는 호재를 만나 1955년 후반경에는 전전의 수준으로 부흥하고 다시 고도성장기에 돌입하였다. 에너지는 석탄에서 석유로 변화되고 태평양 연안에 콤비나트가 끝 없이 건설되었다. 재벌계 기업들이 다시 재건된 것도 이 무렵이라고 한다. 
1960년대 동경 올림픽의 개최와 베트남 전쟁, 1970년에 개최된 오오사카 만국 박람회등에 의한 특수를 겪으며 1968년 국민총생산(GNP)이 자본주의 국가 가운데 제2위에 이른다. 이러한 경제성장은 세계적으로 보아도 희귀한 케이스이며 종전직후의 부흥에 이은 일련의 경제성장은 동양의 기적이라 불리었고 이러한 경향은 쇼와(昭和)시대의 상징이 되었다. 
이 시대 텔레비 세탁기 냉장고의 3종류의 가전제품은 3종의 신기(三種の神器)로 불렸고 급속히 가정에 보급되었다. 이러한 가전제품의 보급은 생활시간의 배분에도 큰 영향을 키치게 되고 여성의 사회진출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당시의 풍조는 큰 것은 좋은 것이다 (Big is beautiful) 였다. 동양의 기적이란 말이 사용되기 시작할 무렵, 일본 특유의 근면, 개인보다 집단이 중요하다는 등 융화의 문화(和の文化)가 그 요인이라고 칭송되었다.
1973 10 5 이집트의 기습선제공격으로 4 중동 전쟁이 시작됐다. 날은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축제일인 욤키푸르(사죄의 ) 이었다. 이집트군의 병력은 75, 무기들은 탱크 32,000, 소련제 미사일(SA-6) 까지 총동원해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병력은 이집트군의 3분의 1 됐고 무기들도 이집트군의 절반도 됐다. 개전 48시간 만에 이스라엘은 17 여단이 전멸되었다. 이때 미국이 이스라엘에게 대대적 지원을 해주었다. 욤키푸르 전쟁에선 소련이 35 달러를 아랍국에 그리고 미국은 22 달러를 이스라엘에 쏟아부었다. 또한 미국은 30일 간 포위됐던 이스라엘에 군수물자를 운반하기 위해 무려 5,566번의 비행 수송작전을 펼쳤다. 미국의 지원을 등업은 이스라엘은 반격에 나섰고 비교적 허약한 시리아의 골란 고원을 집중포격했다. 골란 고원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시리아 탱크 867, 차량 3,000 이상을 파괴했다.  
1973년 10월 6일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하므로서 제1차 석유파동이 시작되었다. 그 영향으로 10월16일 석유수출국기구(OPEC) 가맹산유국 가운데 페르시아 만안의 6개국이 원유공시가격을 1 베럴당 3.01달러에서 5.12달러로 70% 인상한다고 발표하였다. 다음 10월 17일에는 아랍 석유수출국기구(OAPEC)가 원유생산의 단계적 삭감을 결정하였다. 또 아랍 석유수출국기구 제국은 10월 20일 이후 이스라엘이 점령지에서 철수할 때까지 이스라엘 지지국에의 경제제재(石油禁輸)를 결정하였다. 다시 12월 23일 석유수출국기구에 가맹한 페르시아 만안의 산유 6국이 1974년 1월부터 원유가격을 5.12달러에서 11.65달러로 인상하기로 결정하였다.
일본의 소비자 물가는 1974년 23% 상승하였고 전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1.2%의 저성장의 경험을 하였고 고도경제성장은 여기서 종언을 고한다.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