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 17일 목요일

3. 칠지도(七支刀)는 새서(璽書)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논쟁 중인 한일 관련 고대사에서 가장 귀중한 고고학적 유물 가운데 하나가 칠지도이다. 1870년 대 나라현 (奈良縣) 덴리시(天理市) 이소노가미 신궁(石上神宮) 창고에서 1500년의 세월이 흐른 뒤 발견되었다. 길이 74.9 센티메터이며 일곱 개의 가지가 있고 양면에 62 자의 한자가 금상감되어 있다. 글자 일부가 훼손되어 추측해서 해독해야 되는 탓도 있지만  기록된 내용을 둘러싸고 한일 학자간에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칠지도에 각인된 글자는 다음과 같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러한 해독으로는 문맥이 통하지 않는다. 괄호안의 글자는 추정이며 검은 부분은 추정불가한 글자이다.

()四年十()月十六日丙午正陽造百錬()七支刀()辟百兵宜供供候王■■■■ 作
先世以來未有此刀百濟王世()奇生(聖音)故爲倭王旨造傳示後世
 
가장 민감한 부분이 태화 4년이란 연호이다. 보통 동진(東晉)의 연호 태화(太和)로 해석하며 서기 369년이다. 다음은 아랫 줄  “기생성음” 부분인데 백가쟁명의 해석이 나와 있다. 사람마다 다른 주장이 나온다는 것은 “기생성음”의 글자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 네 글자가 칠지도의 비밀을 푸는 패스워드이다. 사진으로 칠지도를 보면 “奇生”은 오류가 생길 여지가 없을 만큼 선명하다. 그러나 “聖音”은 너무 희미하여 논란의 여지가 있다. 모두 “聖音” 또는 “聖晉” 으로 읽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의미가 통하지 않고 억지해석이 될 수 밖에 없었다. “聖音”은 의미상으로 이 자리에 낄 단어가 아니다.
























우리는 이 부분을 “聖音”이 아니라 “璽書(새서)”라고 읽는다. 새서(璽書)란 옥새가 찍혀 있는 문서를 말한다. 이 칼은 백제왕이 손자 세대의 왕을 점지하고 또 그를 왜왕으로 임명하는 문서인 것이다. 백병(百兵)을 물리칠 수 있다는 말의 백병은 여기서 점지된 세자(世子)보다 나이 많은 손주들이 즐비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나이 어린 손자가 백제왕의 낙점을 받아 백제의 세자가 되었으며 동시에 왜왕으로 봉해졌다는 것을 선포하는 의미를 가진 칼이 칠지도이다. 는 근초고왕의 손주 세대의 백제왕임과 동시에 현재의 왜왕이 된다는 뜻이다.

그러면 “奇生”은 세자의 이름이 된다. 백제왕이 세자 기생(奇生)에게 새서를 내려 왜왕으로 한다는 뜻으로 만들었으니 후세에 전하고 보이도록 하라는 의미이다. 칠지도의 사진을 면밀하게 검토한 뒤 전체 명문을 다음과 같이 해독한다.

칠지도의 전면에 35자가 있었다는 것은 지금 모두 인정한다. 그러나 이 면에 더 많은 글자가 있었다고 보인다. “暢德興福祖밑으로 동그란 모양의 옥새를 각인했던 흔적이 있으며 興福祖오른 쪽에 작은 글자 5개가 더 있었다. 흔적만 보이므로 정확한 해독은 불가하지만 첫 글자는 과 비슷하고 3 번째 글자는 과 비슷하다. 짐작컨데 百濟國王印이라고 씌여 있었으며  暢德興福祖밑에 백제왕의 옥새가 각인되어 있었다고 본다.

泰和四年十一月十六日丙午正陽造百錬鐵七支刀出辟百兵宜供供候王暢德興福祖
先世以來未有此刀 百濟王 世子奇生璽書 故爲倭王 旨造 傳示後世

일본서기 진구우(神功)기의 기록을 보자.

여름 5월 찌쿠마노 나가히코(千熊長彦)가 쿠테이(久低)들과 함께 백제에서 귀환했다. 황태후가 기뻐하며 “바다 건너의 지반도 안정되어 야마토(日本)에 볼 일도 별로 없을 터인데 어찌 오셨는가?” 라고 묻자 쿠테이(久低)들이 “저희들의 왕은 야마토의 협력에 감사하고 계십니다. 우호를 더욱 깊게 하고자 왔읍니다.”하고 대답했다. 황태후는 “잘 말해 주었다. 이 쪽도 원하던 바다.” 라 하며 야마토측의 세력 하에 들어 온 다사성(多沙城, 현 하동군 고전면)을 주어 왕래의 거점으로 삼도록 하였다.

진구우(神功) 51(서기 371) 3월 백제의 왕이 다시 쿠테이(久低)를 보내 조공했다. 황태후는 태자와 타케시우찌노 스쿠네(宿禰)에게 “백제와의 친교는 기쁜 일이다. 진기한 공물을 차례로 보내주어 나도 잘 쓰고 있다. 내가 죽더라도 우호를 지켜 나가도록…” 하고 말했다. 동년 찌쿠마노 나가히코(千熊長彦)를 백제국에 파견하여 쿠테이(久低)들을 보냄과 동시 영원의 친교의 뜻을 전했다. 백제의 왕과 왕자는 황송하여 “이 은혜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하고 맹세하였다.

진구우(神功) 52(서기 372)의 가을 9월 쿠테이(久低)들이 찌쿠마노 나가히코(千熊長彦)와 함께 왔다. 그리고 칠지도(七枝刀), 칠자경(七子鏡)등 여러가지 보물을 헌상하고 “우리나라 서쪽으로 흐르는 강을 일 주일 이상 거슬러 올라가면 수원이 나옵니다. 이 물을 마시고 이 수원이 있는 코쿠나(谷那)의 철산()의 철을 채굴하여 영원히 헌상할 것입니다.” 라는 왕의 뜻을 전했다. 그리고 또 왕은 손자인 토무루왕(枕流王)에게 “내가 교류를 계속해 온 동방의 야마토 (日本)는 우리나라의 세력확대에 협력하였고 그에 의거하여 지반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너도 우호를 중시하고 공물이 끊기지 않도록 하면 내가 죽은 뒤에도 나라는 평안하리라.”라 하였다 한다. 그 뒤로 매년 조공이 이어졌다.

일본서기를 보면 진구우 황후가 백제에 대해서 매우 호의적이며 친밀감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서기 기사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우선 진구우 황태후, 황태후의 태자, 백제의 왕(근초고)과 왕자(귀수), 그리고 왕의 손자 토무루 왕(枕流王)이 등장한다. 칠지도는 서기 369년 제작되었다고 보아 무방하다. 일본서기는 진구우 52년 쿠테이(久低)등이 나가히코와 함께 백제에서 가져온 칠지도를 야마토의 진구우 황후에게 전달했다고 기록하였다. 진구우 52년은 진구우 시대의 다른 기록들과 비교하면 서기 372년이다. 서기 369년 백제의 근초고왕은 나이가 이미 70을 넘었고 근구수 왕자가 40대 후반, 진구우가 30세 쯤일 것이다. 일본서기는 불필요한 내용을 이 장면에서 흘리고 있다. 왕의 손자 토무루 왕(枕流王)은 당시 일곱 살의 어린애였는데 왜 일본서기는 그 이름을 여기서 노출하였을까?

서기 363 12월 진구우 황후는 신라 원정을 성공리에 완수(?)하고 돌아오는 길에 쯔쿠지(筑紫)의 우미(宇瀰)신궁에서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일본서기는 그가 호무타()천황(나중의 오우진)이라 하였으나 위에 나온 토무루왕(枕流王)임이 드러난다. 칠지도가 점지한 왜왕이 너무 어려 어머니가 섭정으로 정사을 보게 된다. 결국 진구우 황후는 토무루왕(枕流王)의 어머니이며 삼국사기 백제본기가 기록한 아이부인(夫人, 침류왕의 어머니)이다.(구자일 설)

일본서기 오우진(應神) 40년 춘정월 천황은 오호야마모리노 미코토(大山守命), 오호사자키노 미코토(大鷦)를 불러, “너희들도 자식 이쁜 줄 알게다”라고 말 하니 둘이 함께 대답했다. “예. 알고 있읍니다”. 그러자 천황은 “다 큰 자식과 어린 자식이 있으면 어느 쪽이 더 귀여우냐?” 하고 물었다. 야마모리(大山守命)는 “나이 많은 쪽입니다.”하고 답 하였다. 오호사자키 (훗날의 仁德천황)는 천황의 안색을 보고 그 마음 속을 헤아려, “다 큰 자식에게 불안이 있을 턱이 없지요. 그러나 어린 자식에게는 여러가지로 신경쓰게 되므로 애정도 더 깊을 것입니다.”라 하니, 천황이 매우 기뻐하며 “그 말이 맞다.”라고 하였다. 천황은 우지노와키 이라쯔코(菟道稚)를 태자로 세우고 싶어서 나이 많은 아들들의 의향을 물어 본 것이다. 같은 달, 우지노와키 이라쯔코를 태자로 정하고, 야마모리에게 산천임야등 국토관리를 맡겼다. 오호사자키(大鷦)는 태자의 보좌역을 맡겼다. 

일본서기 진구우(神功)기 겨울 10월 호족들은 황후를 황태후(천황의 어머니)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것을 섭정 원년으로 한다. 3년의 봄 정월 호무타와케(田別)황자를 황태자(후계자)로 했다. 그리고 이하레(磐余, 奈良県井市)를 수도로 하였다. 이후 호무타와케(田別) 황자가 성인이 될 때까지 진구우(神功)황후가 정치를 맡게 된다.

실제로 서기 368년 경부터 진구우 황태후는 섭정으로 정사를 보았을 것이다. 이 때 토무루 왕(枕流王)은 너댓 살이지만 다른 부인들이 낳은 왕자들은 이미 20대의 성년이 되어 있을 것이다. 백제 근초고왕의 옥새는 이 장성한 왕자들을 복종시킬 수 있는 권위의 상징으로 제작되어 열도에 건너 간 것이다.

                                                                                    – 끝 -





댓글 없음: